하루 만에 다우지수가 840포인트 빠지고, IBM 주가가 13% 폭락했습니다. 2000년 10월 이후 최악의 하루를 기록한 IBM만 봐도 시장의 공포가 어느 정도였는지 체감할 수 있습니다. 방아쇠를 당긴 건 독립 리서치 기관 시트리니 리서치(Citrini Research)가 발표한 단 한 편의 보고서였습니다.
보고서 제목은 "2028년 글로벌 지능 위기: 미래에서 온 금융사의 사고 실험". 2028년 6월 시점에서 과거를 되돌아보는 형식으로, AI가 경제 시스템을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단계별로 그려냈습니다. 단순한 비관론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제 메커니즘을 짚었다는 점에서, 월가가 이례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한 것입니다.
"좋은 구조조정"이라는 함정
보고서가 그린 시나리오의 출발점은 역설적이게도 호황입니다. AI 역량이 급격히 개선되면서 기업들은 화이트칼라 직군을 중심으로 인력을 대폭 줄이기 시작합니다. 법률, 회계, 프로그래밍, 컨설팅 등 지식집약적 업무에서 자동화가 본격화되면서 기업 마진은 확대되고, 주가는 오릅니다. S&P500이 8,000선을 넘고 나스닥은 30,000을 돌파합니다.
표면적으로는 완벽한 상승장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치명적인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보고서는 이것을 "노동 대체의 자기강화 고리"라고 불렀습니다. 해고된 사람의 소비가 줄면 기업 매출이 압박받고, 매출이 줄면 비용을 더 줄이기 위해 AI 투자를 늘리고, 그러면 더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는 악순환입니다.
SaaS 산업부터 무너진다
보고서가 가장 먼저 경고한 분야는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산업입니다. 에이전틱 코딩 도구가 발전하면서 기업 고객들이 "우리가 직접 만들면 안 되나?"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서비스나우(ServiceNow)의 신규 계약가치(ACV) 성장률이 23%에서 14%로 급락하고, 6자리 달러짜리 SaaS 계약을 자체 프로토타입으로 대체하는 사례가 늘어납니다.
차별화가 무너지면 가격 인하 경쟁밖에 남지 않습니다. 세일즈포스, 어도비, 인튜이트 같은 대형 SaaS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고, 소프트웨어 ETF인 IGV는 5% 이상 하락하며 다수 종목이 52주 최저가를 경신했습니다.
중개 수수료 모델의 종말
AI 에이전트가 똑똑해지면 중간에서 수수료를 떼는 사업 모델이 근본적으로 흔들립니다. 보고서는 여행, 보험, 배달, 결제 산업을 구체적으로 짚었습니다.
여행 플랫폼의 경우, AI 에이전트가 항공권·호텔·교통·마일리지 최적화까지 포함한 일정을 기존 플랫폼보다 빠르고 저렴하게 구성합니다. 보험 분야에서는 에이전트가 매년 자동으로 조건을 재비교하면서 15~20%의 프리미엄이 사실상 사라집니다. 도어대시(DoorDash) 같은 배달앱은 진입장벽이 무너져 배달기사들이 20~30개 플랫폼의 호출을 동시에 관리하게 되고, 마진이 거의 제로로 수렴합니다.
특히 결제 업계의 충격이 큽니다. AI 에이전트가 비자나 마스터카드 대신 솔라나·이더리움 L2 스테이블코인을 선택하면서 마스터카드의 구매액 성장률이 5.9%에서 3.4%로 둔화됩니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는 더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화이트칼라 고용 붕괴, 그리고 소비 절벽
보고서의 핵심 논리는 간단합니다. 미국 상위 10% 소득자가 전체 소비의 50% 이상을 차지하는데, 이들이 주로 화이트칼라 직군이라는 점입니다. 화이트칼라 고용이 2%만 줄어도 재량소비는 3~4% 타격을 받습니다.
보고서의 시나리오에서 실업수당 청구는 48만 7,000건으로 급증하며, 이는 2020년 4월 이후 최고치입니다. 노동소득분배율은 1974년 64%에서 이미 2024년 56%까지 떨어졌는데, AI 시대 이후 46%까지 추락합니다. 소비가 무너지니 경기가 무너지고, 세수가 줄어드니 정부도 대응할 여력이 사라집니다.
사모신용 위기에서 주택시장까지
시나리오의 마지막 단계는 금융 시스템 전체로의 전이입니다. 젠데스크(Zendesk)가 대표적 사례로 등장합니다. 2022년 102억 달러에 인수된 젠데스크는 50억 달러의 부채를 안고 있었는데, AI 에이전트가 고객서비스를 자동화하면서 연간반복매출(ARR)이 "아직 떠나지 않은 매출"에 불과해집니다. 결국 부채 약정을 위반합니다.
대형 운용사들이 생명보험사를 인수해 "영구 자본"으로 활용한 구조도 흔들립니다. 보험 규제 당국이 사모신용 집중을 문제 삼으면서 아폴로 주가가 이틀 만에 22% 급락합니다. 실제로 이번 증시 하락에서 KKR은 -8.88%, 블랙스톤은 -6.23%, 아폴로는 -4.99%를 기록했습니다.
최종적으로 13조 달러 규모의 주택 모기지 시장까지 위험에 노출됩니다. 모기지 시스템은 차입자가 대출 기간 동안 현재 수준의 소득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제 위에 서 있는데, AI로 인한 구조적 고용 변화는 이 전제를 무너뜨립니다. 샌프란시스코 주택가치지수가 전년 대비 11% 하락하고, 시애틀 9%, 오스틴 8%가 뒤따릅니다.
시장은 이미 반응했다
2월 24일 뉴욕증시는 이 보고서에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S&P500은 -1.04%, 나스닥은 -1.13%, 다우지수는 -1.66% 하락했습니다. 소프트웨어 업종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아 크라우드스트라이크가 -9.85%, 세일즈포스가 -3.78% 떨어졌습니다. 금융 섹터도 -3.33% 하락하며 전반적인 매도세가 이어졌습니다.
다만 보고서의 결론이 완전한 절망은 아닙니다. 시트리니 리서치는 "카나리아는 아직 살아 있다"는 표현으로 마무리했습니다. 경제가 새로운 균형을 찾을 수 있지만, 지금이 대응할 시간이라는 뜻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15% 글로벌 관세 인상 발표까지 겹치면서 시장의 불확실성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입니다.
AI 기술 자체를 멈출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속도입니다. AI가 일자리를 대체하는 속도와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는 속도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벌어지느냐가 이 시나리오의 현실화 여부를 결정합니다. 엔비디아와 세일즈포스의 실적 발표가 예정된 이번 주, 시장은 AI의 미래를 다시 한번 가늠하게 됩니다.